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아니 오히려 제목에 끌려서 골랐다. 언어의 우주, 어도락가의 삶과 공부. 어도락가는 뭐지? 하면서 펼친 책이다. 어도락가는 언어를 두루 맛보고 즐기는 말로 번역가이자 작가님인 신격식님이 만든 말이다. 언어를 즐긴다니. 신기하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영어는 애기 때부터 반강제적으로 시작했고, 중국어는 스펙용으로 시작했다가 외계어 같아 몇 번이나 포기한 내 애매한 외국어들이 떠올랐다.
외국어를 배우는 본질에서 괴테가 한 말을 인용하셨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언어도 모른다.’ ‘ 이 말은 거울을 보기 전에는 자기 모습을 알 수 없다는 말과 통한다’
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외국어를 배우고 남에게 설명 할때는 자신의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 외국어는 자신의 언어를 더 깊게 통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p.24-25
독일어 ‘라우펜’은 ‘걷다’와 ‘달리다’ 둘 다를 뜻한다. 걷기와 달리기의 경계가 늘 명확하진 않으므로 우리가 나아가는 일은 라우펜에 어울릴 때도 많다. 걷고, 달리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고 좋은데, 나야 어도락가니까 그러면서도 언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일 테다. 사람마다 음악을 듣든, 풀꽃을 살펴보는 또 각자의 즐거움을 찾으면 된다. 나는 육상 선수가 되겠다는 무모한 욕심은 없다. 하루하루 즐길 뿐이다. 그러다 보면 꽤 잘 걷고 달리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또는 몇개의 언어를 정복하거나 마스터한다는 원대한 목표도 좋다. 하지만 너무 커다란 열매를 찾으려고 즐거움을 계속 미루기보다는 하루하루 자기만의 언어를 마스터하는 데서 더 큰 보람이 오지 않을까?
글을 읽으면서 난 얼마나 언어를 시험 목적으로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영어나 제2외국어는 즐거워서 배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이 스펙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본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기업에서 요구하는 언어 시험 몇 점 이상, 그 이상을 맞기 위해 경주마처럼 점수를 향해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토익 공부를 할 때 특히 심했다. 모르는 단어, 토익 시험에 나오는 똑같은 독해 지문만 읽고, 시간 안에 풀기 위해 기계처럼 문제만 푸는 행위는 목표에 도달한 순간 영어를 쳐다도 보기 싫게 했다.
하지만 미드를 보니 싸웠던 친구를 오랜만에 보니 그리웠던 것처럼 다시 영어를 탐색하는데 흥미가 돋았다. 이번엔 영어도 중국어도 즐기기로했다. 영어는 내가 관심 있었던 소설책을 보고, 미드도 봤다. 공부가 아닌 내가 알고 싶었던 문장을 낚시하듯이 건져 올렸다. 건진 영어를 내 입맛대로 요리하고, 가족들에게 써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영어라는 언어를 다시 좋아하고 있었다.
어도락가 답게 정말 많은 단어와 그 단어의 뿌리를 알고 계셨다. 어쩌면 번역가보다 언어학자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여러 언어의 단어가 쏟아져 나와 책 초보인 나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님의 언어 개그가 나랑 잘 맞았다. 책을 넘길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하는 언어 디저트와,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는 쓴 한약 같은 언어를 던져주실 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계적으로 언어를 공부하던 사람, 번역기 덕분에 더이상 언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 찾아볼 일도 없으려나. 언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왜 언어를 배워야 할까?라는 의문점이 찾아온 사람이라면 이 책이 고민을 해결해줄 것이다. 신견식 번역가님 덕분에 언어의 맛을 알고, 내 입맛에 맞은 언어를 찾으러 나는 떠난다.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선물(the present) ; 나는 현재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0) | 2020.06.19 |
---|---|
12.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내가 꿈꾸는 삶은 현실이 된다. (0) | 2020.06.18 |
10. 영화 글쓰기 강의 ; 내가 본 영화들을 글로 남겨두고 싶어서 (0) | 2020.06.05 |
9. 행복의 기원, 당신의 행복은 어디서 얻어지고 있습니까? (0) | 2020.05.23 |
8.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번역가 권남희의 위트있는 에세이 (0) | 2020.03.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