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85. 기다리다

by Ateambulo 2020. 1. 23.
728x90
반응형

글쓰기 좋은 질문 642중

 

 

85. 기다리다

나는 기다렸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게 될 사람을. 좋아해서 사귄 줄 알았던 사람은 막상 사귀니 연락하는 게 일이었고, 그 사람의 애정 표현이 나에겐 부담이었다. 전화도 내가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별을 택했고, 그것이 서로에게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이었다. 다들 연애를 미칠 듯이 싸우고, 애정표현도 하는 게 신기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격렬하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연애를 안 하고 있는 내가 불쌍했는지 친구가 소개팅을 처음 주선해줬다. 아마 그 친구는 내가 연애에 성공할 때까지 해줄 생각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소개팅은 한마디로 망했다. 나도 처음이라 소개팅때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몰랐고, 그사람은 자신감이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닳았다. 내가 생각보다 엄청 수동적이고, 이끌어 주는 사람을 원했던것을. 그렇게 나의 첫번째 소개팅을 무산되었다.

두 번째 소개팅이었다. 처음보다 나름 준비를 해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람을 만나니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사람은 달랐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사람이 계속 말을 걸어주니까 무서웠던 첫인상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화가 잘 통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일방적으로 묻고 난 대답만했으니까. 그렇게 까지 해준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나와 전혀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어쩌면 이게 반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번째 소개팅도 망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봐도 난 심각하게 말을 안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서 첫 질문을 던졌다. 내일은 뭐하세요? 그 사람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웃으면서 말했다. 친구를 만나거나 게임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님 내일 만날까요? 그래서 나는 밀당 같은 거 없이 바로 좋아요라고 승낙했다. 그리고 다음날 공원에서 걸었던 기억이 있다. 한 시간 반 넘게 이야기하면서 나의 집에 데려다줬고, 그날 밤 고백을 받았다. 너무 좋았지만 이틀 만에 받은 고백이었고, 이전 연애와 똑같아질까 봐 두려워진 나는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한테 있었다. 마음이 그 사람과 한번 진지하게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몇 년 지난 지금 그 선택이 옳았다. 그 사람은 정말 나와 잘 맞는 사람이고, 가족 같은 사람이 되었다. 우린 성향도 비슷했다. 애정표현을 엄청나게 하진 않지만 눈빛, 표정,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우린 너무 미지근한 것 같아!라고 매번 말하지만 이런 사랑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난 이런 연애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활활 타오르는 화산 같은 사람이 아닌 은은하게 따뜻한 모닥불 같은 사랑을.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