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과거의 난 그랬다. 잘해 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p.9
나도 이 마음을 깨달았을 때가 딱 14살쯤이었나. 부모님까지 아는 사이였는데도 배신하고 괴롭힌 사람이라 충격이 컸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고, 친해지더라도 기대하지 않았다. 생일을 까먹든 카톡을 씹든 나에게 크레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애초에 난 그들에게 바라지도 않았고, 나 또한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친해지게 된 한 친구가 있었다. 취미, 취향도 참 잘 맞았다. 하지만 싸울 일이 생겼다. 그때 속으로 생각한 건 난 왜 얘랑 싸우고 있는 거지. 원래 그냥 넘겨버리는 성격인데 왜?라는 순간 이 친구랑은 싸워서까지 부딪히고 이해를 해보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친구라는 끈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아서, 이 친구에게는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커져있었나 보다. 역시 마음속에 사람이 들어오면 커지는 기대는 막을 수 없나 보다. 난 그걸 친구에게 말했다.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는 친구 덕분에 희망을 조금씩 사람들에게 걸어본다.

나는 창밖에 보이는 모든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하이는 혼자 걸을 때 이렇게 한다고 했다. 회피할 수도 없고, 머뭇거릴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버스가 시내를 통과하거나 속력을 낼 땐 입술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간판들과 표지판의 글자. 말을 고쳐보려고 읽은 건 아니었고 가만히 있기 답답했다. -p. 68
왜 내가 당연하고 여겨지는게 남들에게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사람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맞다. 나도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다. 겹치는 부위마다. 진물이 났고, 제일 심한 곳은 얼굴 양볼이었다. 진물이 흘러 굳은 딱지들로 가득했다. 차라리 여드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볼 때 얼굴부터 보기 마련인데 내 얼굴은 정말 무슨 병에 걸린 것 마냥 사람들이 지나치치 않고 물었다. 화상을 입은 거냐. 아니 도대체 무슨 병인 거냐. 아예 나한테 관심을 안 가져주면 안 될까. 그때부터였다. 마스크를 이용하게 된 건 현재 다 나았지만 병균 아니 좀비처럼 보던 그 철없는 아이들의 시선은 잔인했다. 아직도 그 시선들이 남에게서 느끼는 게 스트레스다. 그래서 사실은 마스크로 생활하는 현재가 더 편하다.

얼음의 나라처럼 지금 이 말들을 그대로 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할 때마다 더듬지 않은 말을 따뜻한 말에 녹여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118
나는 말들을 필사와 일기에 열심히 얼리고 있다. 미래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때의 나는 생각을 많이 했구나. 슬펐구나. 춤출 정도로 기뻤구나. 이런 감정들을 하나씩 얼린다. 미래의 내가 차가워질지, 따뜻해질지 모르니까. 차가워지면 얼린 말을 입에 녹여보고, 따뜻하면 시원하게 입에 물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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