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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아침의 피아노 필사+생각정리

아침의 피아노, 나의 필사 여정 세번째 이야기

by Ateambulo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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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내려오는 내내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했다. 뜻 없는 것들에게도 소리가 있고 그 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한다. 바람 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사람의 마음도 본래 아무 뜻 없이 제 갈 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마음 안에 그토록 많은 뜻과 의미를 품고 담아 사람도 세상도 그토록 시끄러운 걸까.

 

원래 사람도 아무 뜻 없이 자신이 끌리는 것, 마음이 가는 곳으로 스며들어 가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주 옛날에. 지금은 우리가 흐르고 싶은 곳과 사회가 흐르는 곳이 일치하지 않아서 마찰이 일어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물길을 모아서 억지로 바다로 향한다. 가가 각 다른 색의 강물이 모여 예쁜 색을 낼 때도 있지만 지나치면 구정물이 될 뿐이다. 그때 사람들은 서로의 색을 탓하기 시작하다가 물길 자체가 잘 못된 거라 외친다. 그렇다면 일치하는 건 언제일까? 사회를 나에게 흐르게 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물줄기를 내쪽으로 끌고 오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할까? 근데 물은 뭘까? 나만의 개성?

 

공간들 사이에 문지방이 있든 시간들 사이에도 무소속의 시간, 시간의 분류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잉여의 시간이 있다. 어제와 내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쓰임도 없는 시간, 오로지 자체만을 위해서 남겨진 공백의 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매던 생을 이 공백의 시간 안에서 발견하고 놀란다. 다가오는 입원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판결을 기다리는 환자처럼

 

아마 현대인은 공백의 삶을 손수 만들어 내야 할지 모른다. 다들 너무 바쁘다. 바빠서 숨쉬기 조차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랬다. 결국 숨을 헐떡이다가 쓰러졌다. 강제로 공백의 시간이 생겨버렸다. 나는 이때도 무엇을 해야 할 압박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는 이 애매한 상태. 어릴 때 이후 내 의식에서 생긴 이 텅 빈 시간은 나의 조급함과 불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모두 한번쯤은 긴 시간을 투자해 빈 시간을 가져보는 시간을 의무화했으면 좋겠다(법적으로). 나는 나를 정화하고,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기 위해 1년을 명상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1년 동안 쉬었다고 하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나를 위해 싸워왔다. 나의 과거, 미래들과. 그래서 지금 현재에 사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들숨, 날숨 1 초 마저 내 숨은 과거로 가버리고 미래가 현재로 되는 찰나의 순간들을 느끼려고 한다. 이걸 발견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내가 현재에 살고 있구나!

성문 앞 보리수를 찾아가듯 그날 이후 텅 빈 채 흘러간 한 달의 날들을 돌아본다. 뭔가 부글거리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일하고 싶은 것이다.

 

다들 하루를 열심히 살고나면 약간의 피로감과 함께 뿌듯함을 느끼지 않는가? 여기서 피로감은 뿌듯함을 위한 희생의 결과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물론 푹 쉬어줘야 할 때는 제외다) 나는 한 인터뷰에서 아이유가 ' 저는 솔직히 올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지나가는 게 아깝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내년이 더 기대가 돼요. 빨리 내년이 돼서 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싶어요.'라는 글을 봤다. 얼마나 하루를 알차게 보냈길래 다 모인 1년이 아깝지 않다고 확신에 가득 차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루에만 해도 모래처럼 날아가버리는 시간들이 많은데 어떻게 살면 저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러다 하나 깨달은 건 나는 내 안에 꿈틀거리는 걸 무시하지 않고, 조금씩 가려움을 긁어내고 있다는 것. 그럼 잘 살고 있다고 감히 내가 함부로 정의를 내려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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